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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경서

하늘재 (계림령)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21-04-03 18:54:22 조회수 725

위 치 :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

홈페이지 : http://worak.knps.or.kr/

 연 락 처 : 월악산 국립공원 관리소 043-653-3250

개 요 : 월악산 미륵사지 3층석탑을 조금 지난 왼쪽으로 작은 오솔길이 하나 나 있다. 멀리

황장목(적송)과 떡갈나무, 해송 등의 운치있는 풍경을 마주하며, 청량한 하늘 아래

시원한 바람길이 열리는 이 길은 일명 '하늘재'.

길 왼편 아래로 나 있는 도랑은 가뭄탓에 때때로 말라버린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주변의 기암절벽 산봉우리와 길가의 진분홍 물봉선, 짙은 자주빛의 수리취, 노란짚

신나물 등의 들꽃들이 여행객들을 반긴다.

 

얼핏보면 하늘과 맞닿아 있다고 해서 이름지어진 하늘재(해발 525m)는 이름처럼 높

지는 않다.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와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를 잇고 있는

도 경계로서 미륵리에서 3040(2) 정도 걸어 오르면 곧바로 문경 관음리로 연

결된다.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은 하늘재 고갯마루에 이르러 쭉 뻗은 아스팔트 길로

이어지는데 서쪽으로 문경 대미산(해발 1,115m) 정상이 아스라히 시야에 들어온다.

 

겨릅산, 계립령, 대원령으로도 불리는 하늘재는 우리 나라 최초로 뚫린 고갯길.

신라 제8대 아달라(阿達羅)왕이 재위 3(156)에 북진을 위해 길을 열었다. 죽령

보다 수년 먼저 개통된 하늘재는 남한강의 수운을 이용, 한강 하류까지 일사천리로

뻗어나갈 수 있는 지리적 요충지이다. 신라는 일찍이 하늘재를 교두보로 한강으로

진출하였고, 백제와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했다.

이처럼 중요한 전략거점이다 보니 하늘재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기도 하다.

고구려 온달과 연개소문은 하늘재를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시도했으며 고려

시대 '홍건적의 난' 으로 공민왕이 몽진할 때도 이 길을 이용했다. 신라 망국의 한

을 품고 마의태자와 그의 누이 덕주공주가 금강산으로 향할 때 피눈물을 머금고 이

고개를 넘었다 한다. 하지만 하늘재는 조선태종 14(1414)에 지금의 문경새재인

조령로가 개통되면서 군사적 요충지와 사통팔달의 아성을 한꺼번에 조령에게 넘겨

주게 되었다.

 

월악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측은 하늘재의 역사를 되살리기 위해 고갯길 1.5구간

'역사·생태관찰로' 로 조성한다. 현재 하늘재로 알려진 이 길은 지난 70년대에

농로로 새로 개설한 것으로 도랑 너머 오솔길이 진짜 하늘재라는 것. 월악산 자연

생태를 직접 보며 역사를 설명해주고 문화재 화판 등을 설치해 주변 문화유적과 함

께 설명할 방침이기도 하다.

충청북도가 선정한 '충청북도 자연환경명소 100'10걸로도 선정된 하늘재는 그

렇게 옛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한편, 하늘재 아래의 미륵사지는 신라 말고려 초에 창건된 것으로 보이는 옛절터

, 당간지주와 회랑 등의 흔적만으로도 그 규모가 매우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찰로는 유일하게 북쪽을 향하고 있으며 지릅재와 하늘재 사이의 분지인

미륵리에 터를 잡고 있다.

미륵사지의 목조건물은 전란을 거치면서 모두 소실되었고 현재는 5층 석탑(보물 제

95), 석불입상(보물 제96)을 비롯해 석등(지방유형문화재 제19), 3층석탑(

방문화재 제33) 등이 남아있다.

미륵사지는 지난 1977년과 1979년 두 차례에 걸쳐 청주대학교 박물관의 발굴작업을

통해 일연스님이 거처했던 '미륵대원'으로 밝혀졌다.

 

참고로 하늘재는 일반차량의 통행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미륵사지~관음리를 답사

할 계획이면 대중교통편을 이용하되 사전에 정확한 버스시간을 확인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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